저는 오늘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가 생각납니다. 1977년에 개봉한 영화였지만 2007년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도 매회 매진이 될 만큼 영화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. 하지만 제 기억에 남은 이유는 작품의 팬들이 영화 초반 빗소리 사이로 들리는 작은 목소리에 대해 '자막을 넣어야 한다! 아니다 빼야 한다!' 엄청난 의견을 주셨기 때문입니다.

자막을 넣고 빼는 건 자막 편집자가 타임코드를 찍는 순간 결정이 됩니다. 번역을 하기 전 편집자가 적당한 길이로 대사를 나눠주는 스파팅을 하는데 영상과 어울리게 떴다 사라질 수 있도록 자막의 시간 값을 만들어 주는 작업입니다.  물론 번역과 감수 과정에서 추가 혹은 삭제되기도 하죠.

영상 자막은 크게 대사 자막과 화면 자막으로 나뉩니다. 대사 자막은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가운데 한 줄, 또는 두 줄로 나오는 자막입니다. 화면 자막은 그 외에 영상 제목, 이름, 설명 등 대사 외에 글자로 전달하는 모든 것입니다. 기존에 있는 자막과 최대한 비슷하게, 마치 원래 있던 것처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 시간도 몇 배는 더 걸립니다. 디자인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상을 편집도 해야 하니까요. 자막단의 자막 편집자들은 모두 영상 편집을 하기 때문에 자막이 없는 영상을 자막이 있는 영상으로 만드는게 가능하지만 영화제에서 자막 편집만 할 땐 화면 자막을 영상과 똑같이 만들어서 입히려면 편집자가 한 명 더 필요했죠.

사진처럼 한글 자막 상영본을 만드는 자세한 편집 과정은 21세기자막단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.

다시 서스페리아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. 게시판에는 여러 가지 찬반 의견이 올라왔고 둘 다 나름 일리 있는 주장이었습니다. 지금 같으면 감독님께 연락을 드려서 물어봤겠지만 당시엔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본과 영화 줄거리, 관객 피드백 등을 반영해서 이후 상영에는 자막이 들어간 버전으로 상영했습니다.

올여름은 많이 덥다고 하니 다른 사람이 만든 자막에는 그 부분이 어떻게 나왔지는 볼 겸 서스페리아를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. 

- 21세기자막단 김빈